재능에 관한 고찰.

저는 '재능'의 벽에 부딪히려면 자신의 한계를 몇 번이나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재능' 때문에 안돼", "재능이 없어서 못 해."

이런 말들은 전부 노력을 다하지 못한 사람의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재능을 탓하고 노력을 했는데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 탓을 하려면 보통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투자(노력, 시간, 돈)가 필요합니다.

이를 전제로 읽으면 제 의견에 동의하거나, 태클을 걸기 쉬울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웹소설계에는 꽤나 오랫동안 '재능물'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재능물이란 재능이 철철 넘쳐흐르는 주인공이 손쉽게 기술등을 배우고 경쟁자들을 시원시원하게 다 제껴버리는 사이다물입니다. 장르 자체가 불합리하거나 재미없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시원시원한 전개와 적당한 고구마, 지루할 때쯤 터지는 사이다가 높은 몰입도와 재미를 줍니다. 게다가 주인공의 역사적인 결과물 같은 업적까지 보고 있노라면 감동마저 느껴집니다.

어차피 이렇게까지 재능이 몰빵한 사람은 찾기 힘들고, 재능과 그 재능을 발휘할 환경까지 알아서 척척 갖춰지는 현실도 없는 것은 다들 알고있을 테니 대리만족, 킬링타임용으로 읽기 매우 좋습니다. 작품성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읽다보면 너무 불편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재능만 있으면 바로 능력으로 나타나서, 그 재능을 갈고 닦는 묘사를 하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글들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런 소설이 베스트 상위에 올라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고 강제할 수 없으니 뭐라할 수는 없습니다만, 베스트 상위에는 좀 더 퀄리티가 높은 작품이 올라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왜 재능만 얻어서 능력 발휘하는 게 불편할까?

이건 제가 노력에 큰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보다 거부감을 더 안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라이벌(같지 않은 초반 갈등을 야기하는 등장인물)입니다. 주인공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재능으로(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1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미 국내 혹은 세계에서 통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빌런 혹은 조력자 정도로 나옵니다. 라이벌일 수도 있고, 초반 주인공 경험치용 빌런일수도 있습니다.

헌데 읽다보면, 작가는 분명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상대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재능으로 엄청 노력해서 능력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능력은 주인공은 굉장히 쉽게 얻으니까 상대방을 굉장히 우습게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나 행동 들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 피아노에 대한 재능이 발현됐다고 보면, 한 하루, 이틀... 길어도 일주일 연습하고 라이벌보다 더 잘칩니다. 그럼 뭐 당연하다는 듯이 그 라이벌은 질투를 하게 되고, 선생들은 주인공을 스카웃하려고 하는데, 그에 대한 대처가 해당 업계 사람이라면 굉장히 기분나쁠 만한 행동과 말을 합니다. 어떤 업계이건 비판점이 있으니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있으나, 그걸 우연찮게 재능을 얻어서 그 재능을 제대로 갈고 닦지도 않은 주인공이 할 말은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끔 자신보다 실력이 못 한 사람들을 노력을 안한다고 까거나, 우습게 보거나, 아니면 재능이 없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1등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아등바등 별 짓을 다 하는 사람을 빌런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심심치않게 보입니다. 물론 아등바등 별 짓을 다 하다가 범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게끔 작가들이 쓰기 때문에 좀 딱하긴 해도 받을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다만, 좀 너무한 것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재능을 폭리로 취하는 내용은 현재 굉장한 이슈로 떠오른 것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스테로이드 사용"입니다.

헬스 혹은 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튜브의 알고리즘으로 많은 영상을 접해봤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농구영상을 많이 보는데, 거기서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헬스 영상을 띄우더군요. 뭐 어쨋든 덕분에 재밌는 영상들 많이 봤습니다. 거기서 비내추럴이라 주장하는 로이더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더군요.

"스테로이드를 맞아도 근육을 키울 노력을 해야한다. 내가 노력했으니 이 근육을 얻었지, 니들이라면 그마저도 못했다."

뭐, 이런 식으로요. 문제는 이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내추럴의 한계점까지 발달시킨 적이 없습니다. 일단 그런 영상이 없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내추럴로 한계까지 근육을 발달시키는 건 힘드니 편법으로 스테로이드 찾아서 쫌만 운동해도 근육 불어나는 걸 보면서 운동하는 것을 "노력"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어이없는데, 억울하면 너도 써라 라는 식으로 말하다니...

사람들이 이 로이더들 욕 엄청 많이 하는데, 사실 웹소설 중 재능물에서 이런 논리가 굉장히 많이, 자주 보입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작품이 이런 논리로 전개됩니다. 뭔가 극단적인 대비를 원했는지는 몰라도 재능을 얻기 전 주인공은 백수(혹은 백수만큼 능력 없는 사람)에 불효자에 인성도 별로, 뭔가 열심히 해보지도 않고 사회 탓이나 하고 그냥 찌질이 중의 상 찌질이였다가 죽어서 회귀하거나 60억 분의 1의 재능을 얻어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승승장구 합니다.

근데 문제는 주인공이 찌질할 때 능력있는 애들을 실컷 인성질이나 하는 인성쓰레기로 묘사해놓고 주인공도 능력을 갖추고 난 후에 비슷한 행동들을 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재능 없을 때 노력할 생각도 못 했으면서, 능력없는 애들 혹은 주인공에게 질투느끼는 애들을 빌런처럼 묘사하는 거 보면 좀... 저 로이더들 생각나서 역겹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사람들, 명문대생, 대기업 사원 등등을 전부 인성 쓰레기에 자기보다 능력이 낮으면 사람 우습게 보고, 전부 선민사상을 지니고 있는 이기적인 빌런 처럼 묘사하는데, 그거 참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더군요. 왜 명문대에 다니는 잘생긴 능력자는 하나같이 다 음흉하고, 겉과 속이 다르고, 차별 쩔고, 결국에는 인성 빻은 빌런이 되는 겁니까? 그 정도 명문대에 그 정도 능력으로 우대받는 애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갖춘 애들이 더 많던데요...?


이러한 현상은 모두 작가들이 '능력' 혹은 '재능'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본인이 그렇게 능력을 갖춘 적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뭐, 능력있는 사람을 빌런으로 묘사하는 건, 작가가 그런 사람만 겪었을 수도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다만 '능력'에 대해서는 좀 깊게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더 재밌는 소설을 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웹소설을 읽고, 웹소설은 소설도 아니다 라면서 무시하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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