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악하지는 않았다


1. 봐줄만한 액션

코로나 시국으로 영화 개봉이 늦춰지는 현 상황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은 돋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만악'을 보기전에 '반도'도 관람했었지만, 너무나 실망했었기에 어느정도 기대를 낮추고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의외로 액션이 괜찮았습니다. 근접거리의 맨손격투부터 총기를 이용한 액션 시퀀스까지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대를 낮추고 관람하였던 것도 한 몫 했지만, 포스터에 내걸었던 문구처럼 액션영화로서는 충분히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맨손격투부터 얘기하자면, '아저씨'만큼의 정교한 액션 시퀀스는 표현해내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조금 기대하였던 것은 극 중 황정민의 캐릭터는 전직 정부요원입니다. 즉, 대상을 암살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해온 인물이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황정민이 선보이는 액션 시퀀스에서는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느낌으로 그려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영화 극초반부에 펼쳐지는 일본 야쿠자 암살 시퀀스에서는 암살대상의 주변인물부터 하나씩 은밀하게 처리해나가는 치밀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긴 합니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영화가 흘러감에 따라 앞뒤없이 돌진하는 캐릭터로 갑자기 변하면서 일관성이 없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오히려 이정재의 캐릭터가 맨손격투에서는 액션으로서의 쾌감을 선사해줍니다. 황정민처럼 정부요원으로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온 캐릭터가 아닌, 본인의 욕구에 충실한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로 그려진 만큼 상대를 제압하는데 있어서 더욱 과격한 액션을 표현해냅니다. 

그리고 후반부의 총기액션입니다. 아무래도 인물들간의 신체가 직접 부딪히는 맨손격투보다는 긴장감이 덜한 것이 총기액션입니다. 액션의 주체가 되는 것이 총알 뿐만이 아닌 폭탄과 차량들도 더해져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그렇기에 '다만악'은 스케일을 키워서 표현하는 것에 더 집중을 하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국영화의 총기액션은 '우는남자'가 마지막이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돌격소총이을 사용한 액션은 이질감이 들지만 동시에 인상 깊게 남은 영화였습니다. 반면, '다만악'은 태국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여 표현의 제약을 낮추었습니다. 이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2. 믿고보는 배우들

앞서 서술했던 액션 뿐만이 아니라 각 캐릭터를 표현한 배우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뚜렷한 선악의 대립구도는 아니지만, 황정민과 이정재는 각기 다른 개성으로 캐릭터를 그려내었습니다. 황정민과 이정재라는 두 배우의 조합은 이미 '신세계'에서 많은 관객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다만악'에서는 '신세계'에서처럼 흔히 말하는 케미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두 배우의 캐릭터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다만악'에서는 캐릭터들의 대립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많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은 센 캐릭터라기보다는 처절한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영화 극초반부의 암살을 끝내고 나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듯한 연기는 후반부의 어떤 비밀을 알고 나서 변해가는 황정민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좋은 발판으로 그려집니다. 황정민의 캐릭터는 평생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살아온 인물입니다.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에 지쳐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그의 캐릭터는 우산도 안쓰는 것, 아무런 가구도 놓여있지 않은 집에서 맨바닥에 누워서 자는 것 등으로 표현해낸 것도 공감을 일으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황정민의 캐릭터의 서사에 굳이 사랑을 집어넣었어야 하는가 의문이 남습니다. 다른 영화보다는 신파적인 요소를 많이 자제한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조금 더 냉정한 캐릭터로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반면 이정재의 캐릭터 '레이'는 확실히 인상에 남을만한 캐릭터입니다. 사실 개연성을 따지고 보자면 황정민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이긴 합니다. 극초반부에 살해당한 야쿠자의 의형제처럼 그려지지만 정작 후반부에 가서는 황정민을 죽이는 이유에 대해서 '이유 같은것은 까먹었다'라고 말을 할 정도니 말이죠. 그러나 이정재라는 배우가 그려온 악역의 이미지 중에서는 '관상'의 수양대군만큼 확고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창백한 얼굴에 문신으로 가득한 몸에 화려한 옷을 입어도 멋있어 보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관상'에서는 송강호의 대사처럼 이리같은 비열한 이미지로 그려졌지만, '다만악'에서는 뱀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황정민을 쫓는 자로서의 '레이'는 치밀함이 부족하게 그려진 것이 아쉬웠습니다. 황정민이 만나는 주변인물들을 하나씩 죽이면서 범위를 좁혀가지만, 너무 사전설명 없이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쫓아옵니다. 황정민이라는 목표를 조사하는 디테일한 묘사가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정민의 '유이'입니다. 출연자 목록에는 있지만 예고편이나 포스터에 등장하지 않은 만큼 저도 궁금해하면서 그의 등장을 기다렸습니다.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감초같은 역할입니다. 

3. 인상적이었던 촬영

기대를 낮추고 보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던 액션이었지만, 촬영기법도 어느정도 기여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액션신에서 여러개의 컷으로 나눴다거나 CG를 사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물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움직임도 촬영의 기술이나 CG를 이용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쾌감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반복되면 지루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만악'도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는 액션 촬영의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황정민과 이정재의 맨손격투 장면에서는 슬로모션과 카메라의 움직임을 과장되게 하는 것으로 서로를 때리는 충격을 전달시킵니다. 효울적인 선택이었고, 또한 효과적인 선택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액션신의 제일 큰 목적은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촬영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은 당연한 선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만 더 욕심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후반부의 태국 로케이션도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영화의 재미에 제 역할을 합니다. 전반부까지의 한국이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었다면, 중후반부의 태국으로 넘어가면서 색감이 밝아지고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태국으로 화면이 전환될때에 음악이나 편집도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총기를 사용한 액션의 제약을 없앴다는 것이 가장 큰 역할입니다.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을 위험하고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범죄도시처럼 그려낸 것은 어느정도 반발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한국 관객에게 있어서 이질감을 없앨 수 있는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4. 마치며

코로나 시국으로 볼 영화가 많이 없는 중에 반갑게 관람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았던 영화이기 때문에 액션영화로서의 재미는 충분히 느끼실 수 있습니다. 잔혹한 장면이 생각보다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비위가 약하신 분들도 크게 무리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1. 마음을 비우고 본다면

"너브"는 컴퓨터 화면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에서부터 흥미롭게 시작합니다. 주인공이 노트북 화면을 통해 각종 소식을 접하는 화면부터 같이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글의 첫머리에 올린 포스터처럼 "너브"는 최신 감성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학교에서 조용히 지내는 주인공 "비"가 우연히 너브라는 아프리카 방송 비슷한 것을 시작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영화입니다. 
제가 팝콘무비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주연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스토리의 세밀함 등을 따지고 들어가면 흠이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본다면 한번 쯤은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영화제목이기도 한 "너브"는 뻔뻔함, 배짱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화 문구인 '가장 미친놈이 모든 걸 갖는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화 속 주요인물들은 "너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인 "왓쳐(watcher)"가 제시하는 도전들을 수락하고 대담하게 생방송으로 보여주면서 돈을 벌어들입니다.
여기에 주인공 "비"도 참가하게 되면서 어딘가 수상하지만 멋있는 남주인공 "이안"과 같이 여러 도전들을 수행해 나가면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젊은 남녀 주인공이 여러 사건들을 거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진부한 스토리이지만, 영화에서는 다양한 색감을 통해 그려낸 인터넷의 화면들과,  빠른 리듬의 스토리 전개로 지루하지 않게 그려냈습니다.

2. 조금은 부족한 메시지

영화 내에서 그려지는 "너브"라는 방송은 흡사 한국의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소위 별풍선이라는 돈을 벌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비제이들도 많이 보이는 것처럼, "너브"에서 나오는 '플레이어'들도 크게 다르지 않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영화는 두 주인공의 로맨스에 더 무게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을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내에서 사망하는 인물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왓쳐'들이 지시하는 도전들을 수행하는 '플레이어'들의 행동은 위험하고 불안하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담하고 배짱이 있어보이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쉽게 비교해서 말씀드리자면, 한국영화 "소셜포비아"에서 그려낸 개인방송의 어두운 면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신세대 감성으로 그려낸 로맨스 영화라고 하더라도, 위험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있는 법입니다. 

저는 영화에서 제일 아쉬웠던 것이 바로 "너브"라는 방송을 운영하는 방식을 위험한 해커집단처럼 그려내고 결말까지도 마무리를 짓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맨 처음 주인공인 "비"가 '너브'의 플레이어로서 가입할 때 간단하게 규칙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복잡하게 그려지면서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밀고자는 보복당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함부로 가입했다가는 위험한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비"는 친구에게 너는 누구 앞에 나서서 행동할 배짱이 없다는 말을 듣고 욱하는 마음에 가입을 해버립니다. 본인의 지문과 얼굴 사진을 제공하면서 까지 말이죠. 

두 주인공들이 살아남고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면, 어차피 팝콘무비인데 상관없는것 아니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후에 리뷰를 작성하면서 영화에 대해 조금은 아쉬웠던 부분도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3. 그래도 지루하진 않다.

앞서 영화에 대해 느낀 장단점을 말씀드렸지만, 확실한건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90여분이라는 길지 않은 상영시간에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몰입도가 높습니다. 새로운 느낌의 로맨스 영화를 찾고 계신 분들에게도 권해드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1. 전쟁영화의 새로운 해석

전쟁영화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장르가 표현됩니다. 액션과 드라마죠. 최근 들어서는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망가져가는 사람의 심리를 다룬 드라마로 만들어진 전쟁영화도 많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쟁영화를 즐겨보지는 않습니다. 물량공세로 퍼붓는 액션은 계속 보기에는 피곤하고, 전쟁 속에 놓여진 심리적으로 망가져가는 캐릭터를 보는 것도 어느정도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1917은 전쟁을 새롭게 그려냅니다. 비슷한 장르라고 말한다면 파운드 푸티지 영화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인물만 따라가는 화면은 마치 현미경으로 전쟁을 비춰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거대한 두 진영 간의 대결을 망원경으로 보는 듯한 느낌과는 전혀 다릅니다.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체험"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아카데미가 선택한 이유

저는 개봉 후 좀 지나서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 것도 있고, 아이맥스에서 보기 위해서 시간을 두고 관람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듣고서는 마스크를 쓰고, 바로 관람했습니다.

1917을 관람하면서 처음 알게된 단어인 "원 컨티뉴어스 숏" 촬영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버드맨"이 같은 방식으로 촬영된 영화입니다. 영화 전체를 원 테이크로 촬영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장면이 하나로 연결된 듯이 촬영한 것을 말하죠. 사선을 건너야 하는 두 병사를 따라가는 카메라에서 아름다우면서도 소름끼치는 전장의 한복판을 관객들은 같이 건너게 됩니다. 두 병사들이 장군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 건너는 통칭 "노맨스랜드"는 연합군과 독일군의 참호 사이의 구간을 말합니다. 시체들이 걸려있고, 참호에서 언제 적군이 나타날지 모르는 그 누구도 살아있을 수 없는 공포의 땅입니다. 하지만 초중반 노맨스랜드를 지나고 나면 "1917"은 서부전선의 아름다운 풍경도 보여줍니다. 병사들이 잠시나마 농담을 나누면서 걸어가는 것처럼 인물의 바로 옆에서 촬영하는 방식 덕분에 기존의 전쟁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아름답고 고요한 순간들을 만들어냅니다.


1917을 다 보고나서 한가지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작품상을 받아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생충이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엄청난 위업입니다. 하지만 두 영화를 다 보고나서 제가 느꼈던 감정으로 보았을 때 1917에서 훨씬 전율을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글이 올라갈 때에는 이미 "1917"이 영화관에서 내렸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된다면 극장에서 가능하면 아이맥스에서, 차선책으로는 최대한 큰 스크린에서 감상하기를 권장드립니다. 



온고지신의 좋은 예


1. 스크린으로 만나보는 도술

이제 히어로무비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마블과 DC영화가 대표적인 예이죠. '전우치'는 한국의 색깔을 입고 나온 잘 만든 영화입니다. 미국은 마블이나 DC코믹스라는 역사가 오래된 원작이 있습니다. 그에 기반하여 현재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DCEU'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죠.  우리나라도 액션영화를 재밌게 만들지만, 한국형 판타지 영화는 거의 없는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신과 함께'가 사후세계를 한국적인 느낌으로 그려냈다고 볼 수는 있지만, 한국 고유의 느낌을 가진 액션영화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우치'는 도술을 영화속에서 훌륭히 표현해내었습니다. 부적과 환영을 이용한 액션은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술을 표현한 것은 예전의 만화책 '머털도사'에서 보았던 기억 밖에 없었는데, 커다란 스크린으로 도술을 표현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속에서 제대로된 명칭은 나오지 않지만, 도술을 이용한 다양한 액션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복제하는 분신술부터 환영술, 물이나 불을 이용해 싸우는 장면까지 CG로 어색하지 않게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도 '전우치'가 재밌는 영화가 될 수 있었던 큰 요인입니다. 도술을 사용하는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되고, 배우들은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그려나가며 도술을 표현해내야 합니다. 능청스러우면서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누구하나 어색하지 않게 표현해내었습니다.

강동원은 역시나 장난스러운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능글맞게 행동하는 강동원의 연기는 후에 '검사외전'에서도 볼 수 있으나, 역시나 '전우치'만큼 인상깊게 남지는 못했습니다. '전우치'라는 영화가 도사가 되어가는 성장영화라는 측면으로 보았을 때 장난스럽다가도 깨달음을 얻어가는 젊은 도사의 역할에 강동원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전우치와 콤비를 이루는 초랭이 역할의 유해진도 큰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는 초랭이의 작은 반전가지 알고 나면 유해진의 캐릭터 설정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화담은 세련되면서 날카로운 느낌을 잘 살려냈습니다. '전우치'는 크게 과거와 현재의 시간대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과거 시간대에서는 본인의 정체를 숨기고 선비처럼 얌전하게 행동했다면, 현재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욕심을 드러내며 전우치를 압박해나갑니다. 사실 현재 시간대에서의 화담의 모습은 최동훈 감독의 전작인 '타짜'에서의 아귀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양복을 입고 파마를 한 머리 등 외관은 비슷하지만, 부채를 들고 도술을 구사하는 모습은 묘하게 어울립니다.  

2. 시리즈로 나왔으면 하는 기대감

처음 '전우치'를 보고 나서 저는 후속작을 기대했습니다. 이야기를 확장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CG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멋있는 액션장면이 탄생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도 후속작의 소식은 들려오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년 12월에 진행되었던 전우치 10주년 기념 상영회에서 최동훈 감독 본인이 강동원 배우가 더 늙기전에는 찍고 싶다고 밝혀서 조금의 기대를 갖고는 있습니다.

물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 치밀한 세계관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이라는 히어로를 시작으로 확장해나간 것처럼 '전우치'도 분명 좋은 시작점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한국형 판타지 영화가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건조하게 깔끔하게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최측근 인물이 사살한 것은 흔치 않은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다루어져 왔던 소재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005년도 작품 '그 때 그 사람들'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이 블랙코미디의 느낌이었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건조하고 무겁게 흘러갑니다.

두 작품 모두 재미있게 감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남산의 부장들'을 더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실화에 기반하고 있고, 블랙코미디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암살사건이라고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마피아 조직을 다룬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조직의 보스 자리가 위태로워지면서 살아남기 위한 2인자들의 심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다만 조직이라는 곳이 중앙정보부와 청와대이고, 그 보스가 18년 동안 장기집권해온 대통령이라는 것 뿐이죠.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에서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짧은 시간을 다룹니다.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피살하기 40일 전부터를 그려내고 있죠. 40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그 주변 2인자들의 관계에만 집중합니다. 당시의 일반 시민들의 상황이나, 제 3자의 시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 믿고보는 배우들

실화에 기반한 영화인 경우에는, 실제 인물과 생김새가 얼마나 비슷한가가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그런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심리를 표현한 연기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박정의 대통령을 연기한 이성민은 극 중에서는 제일 정적으로 표현됩니다. 자신의 대통령직에 위기가 다가올 것을 알고 2인자들(이병헌, 이희준)의 충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합니다. 아무래도 상징적인 인물이다보니 겉모습에서도 가장 닮게 표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외모 뿐만이 아닌, 언행에서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곁엔 내가 있잖아'와 같이 의중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모호한 말버릇까지 세심하게 연기하였습니다.

곽도원은 분량이 적은 것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극 초반 청문회에 출석하면서 모든 등장인물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우리에게는 제일 익숙한 능글맞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상은 언제 제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싸인 심리를 감추기 위해 조금 과장된 연기를 보여준 것이 새로웠습니다. 제일 먼저 박정희 대통령에게 버림받고 이병헌에게도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면서 혼란의 씨앗을 제공하죠. 권력에 의해 먼저 희생될 때 한 켤레밖에 없는 구두를 바라보는 눈빛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가장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희준은 제일 큰 변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이병헌과 대립해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극 초중반까지는 이성민(박정희 대통령)에게 신임받지 못하고 이병헌에 대한 열등감에 하극상까지 벌이지만, 중후반부에는 입장이 역전되면서 걸음걸이나 행동이 커지는 표현이 인상깊었습니다. 이희준 배우 본인도 위압감을 위해 체중을 늘렸다고 밝혔는데, 확실히 커진 풍채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극의 긴장을 불어넣는데 충분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가장 감정이 폭이 큰 연기를 보여준 이병헌은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김규평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달콤한 인생의 선우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우두머리에게 버려지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많이 닮았습니다. 허나 김규평이라는 캐릭터는 후반부의 궁정동에 이르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이중적인 감정을 훌륭하게 표현해내었습니다. 마지막 궁정동에서의 거사를 실행하기 직전 술잔을 따르고 음복을 하는 그의 모습은 필히 극장에서 관람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1. 왜 A-인가

B급 감성, B급 영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규모의 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가 A급이라고 한다면,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영화를 B급 영화라고 말합니다. 

오늘 소개할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이하 록 스탁)'도 B급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A-라고 칭한 이유는 '너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DVD대여점에서 이 영화를 처음 골랐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갓 나온 최신작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 아닌, 예전 영화들 중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기 위해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최신작들과 조금 시간이 지난 영화들은 대여료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더 적은 가격으로 재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었던 점원이 정말 재밌다며, 무조건 봐야 한다면서 상기되었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게 감상하게 된 '록 스탁'은 저의 인생 영화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쓸데없는 신파나 메시지 등이 없는 순수 오락영화로서 '록 스탁'은 제 역할을 다해냅니다. 많은 자본을 들여 눈요깃거리를 제공해주는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있는 한편, 잘 짜여진 스토리와 인물들간의 관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가이 리치 감독의 장기가 돋보입니다. 


2. 편집이 잘 된 난장판

포스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록 스탁'은 주연배우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고군분투하며 얽히고 설키는 영화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많아질수록 영화는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여기서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것은 감독의 역량에 달려있죠. 이러한 영화에는 극을 이끌어갈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록 스탁'에서는 '마약, 돈, 장총'이 그 역할을 합니다. 영화의 원제는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각각 마약, 돈, 장총을 의미하죠. 

여느 범죄영화에 나올 법한 소재들이지만, '록 스탁'은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난장판을 보여주는데 집중합니다. 지금에서야 다양한 촬영기법들이 이용되지만, 1998년 당시만 하더라도 슬로모션이나 분할된 화면 등은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있어 분할화면은 효과적인 기법이다.


대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결말을 깔끔하게 맺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특히나 범죄 장르의 영화에서는 극의 흐름에 따라 도중에 등장인물을 죽이는 경우가 아주 많죠. 허나 '록 스탁'은 후반부에 모든 인물들을 서로 만나게 함으로써 깔끔하게 마무리짓습니다. 권선징악이라기보다는 앞선 모든 상황들의 결과로써 일어나는 나비효과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이 영화가 가이리치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후에도 스내치, 셜록 홈즈, 킹 아서 등 세련된 편집으로 필모그래피를 이어나가는 그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이번엔 영화 리뷰가 아닌 제가 생각하는 BEST 모음을 올려볼까 합니다.


앞으로는 영화리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따른 BEST모음도 올릴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달리기' 추격전 BEST


* 순위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 다른 추격전 명장면을 아신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1. 추격자 (2008) "4885 추격 시퀀스"

이 사진만 보더라도 저절로 나오는 대사가 있을것이다.


김윤석과 하정우 주연의 "추격자" 속 시퀀스를 첫번째로 선택해보았습니다. 

영화 제목처럼 김윤석이 살인마 하정우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가 없는 장면이 바로 "4885" 추격 시퀀스입니다.


김윤석이 하정우를 추격하는 과정은 사실 박진감이 넘치는 장면은 아닙니다.

다른 액션영화처럼 멋지게 장애물을 넘는 장면은 없습니다. 오히려 헛구역질을 하거나, 하정우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등의 사실적인 표현을 보여줍니다. 


추격전은 쫓고 쫓기는 장면뿐만 아니라, 서로가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을 추격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중요합니다.

"4885" 추격 시퀀스에서는 하정우의 핸드폰 번호만 단서로 알고 있던 김윤석이 짧은 시간동안 하정우의 셔츠에 묻은 핏자국, 흥분하는 태도 등을 수상하게 여기고 "야 4885 너지?" 이 대사와 함께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하정우와 의심을 하는 김윤석의 연기가 곧바로 이어지는 추격장면의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2. 본 얼티메이텀(2007) "탕헤르 추격 시퀀스"

달리기 추격장면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본 시리즈에서 항상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추격신입니다.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에서는 자동차 추격신이 있었고, "본 얼티메이텀"에서는 이번에 소개할 탕헤르 추격 시퀀스가 있습니다. 물론, "본 얼티메이텀"에서도 후반부에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 시퀀스가 있지만, 주제가 달리기 추격전인 만큼 이 장면을 선정해보았습니다.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은 '임기응변에 능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방과의 격투에서는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활용하고, 누군가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지도를 펼쳐서 최적의 경로를 생각해내죠. '탕헤르 추격 시퀀스'에서도 니키 파슨스가 분해해서 떨어뜨린 휴대폰 부품들을 살펴보고 도망간 방향을 바로 계산해내죠. 이 시퀀스에서는 쫓고 쫓기는 상황이 뒤섞여 있습니다. 제이슨 본은 경찰한테 쫓기고, 니키 파슨스는 CIA요원한테 쫓기고, 그 CIA요원을 제이슨 본이 추격하죠. 이 복잡한 상황에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제이슨 본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경로를 계산합니다. 집과 집 사이를 넘나들때, 담장의 유리조각을 대비해서 수건을 손에 두르는 디테일까지 살아있죠.


특히나 위의 사진에 나온 창문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카메라맨까지 같이 와이어를 착용하고 등 뒤에서 촬영했던 일화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추격 시퀀스 명장면에 손 꼽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3. 미션임파서블:폴아웃(2018) "런던 추격 시퀀스"

추격 장면에서 도시의 경치까지 같이 감상하는 것은 드문 경험이다.


앞선 두 영화의 추격장면이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번에 소개할 추격 시퀀스는 긴 호흡으로 만들어진 장면입니다. 바로 "미션임파서블:폴아웃"의 런던 추격 시퀀스입니다. 


처음에 영화관에서 보고 나서 제 머릿속에는 '탁 트인 느낌의 추격장면'이었다라고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톰 크루즈는 영화 대부분의 장면을 스턴트 없이 하는것으로 유명하죠. 이 "런던 추격 시퀀스"에서도 긴 거리를 전력질주합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톰 크루즈를 따라가죠. 


"런던 추격 시퀀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추격경로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두 영화의 추격장면과 다르게 "런던 추격 시퀀스"에서는 조력자인 벤지가 톰 크루즈에게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장애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BEST로 선정한 이유는 "톰 크루즈가 직접" 촬영했기 때문입니다. 스턴트 배우가 이 추격장면을 연기했다고 하면, 멀리서 찍거나 혹은 등 뒤에서 촬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을 쫓아가고 있는 상황에서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제약이 생깁니다. 하지만 톰 크루즈가 직접 연기함으로써, 상대방과의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살펴보는 눈빛, 조력자인 벤지와 대화하면서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 등이 표현됨으로써 추격장면의 재미요소를 더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런던이라는 도시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카메라의 구도는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13구역(2004) "오프닝 시퀀스"

실제 파쿠르 경력자가 하는 만큼, 매끄러운 동작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에는 "진짜" 파쿠르를 하는 사람들의 추격 시퀀스입니다. 바로 "13구역"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수많은 액션영화나 게임에서 '파쿠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프랑스어로 '길'을 의미하고, 자신만의 길을 다양한 움직임으로 개척해나가는 행위예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13구역"의 주연인 다비드 벨이 바로 파쿠르의 창시자입니다. 여기까지 소개했으면 추격장면의 재미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13구역이라는 영화 자체가 파쿠르 액션의 극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마케팅에서도 강조해왔는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다양한 동작들로 적의 포위에서 빠져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액션영화보다도 "13구역"의 모든 장면들은 몸의 움직임 그 자체에 주목한 액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도 높은 곳에서 낮은곳으로 내려가면서 구르고, 뛰어넘고, 벽을 이용해 상대방을 넘어가는 등 파쿠르를 훈련해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속도감과 유연한 액션을 보여줍니다.



5. 007 스카이폴 "실바 추격 시퀀스"

추격전이라고 해서 항상 뛰어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추격 시퀀스 BEST는 "007 스카이폴"의 실바 추격 시퀀스입니다. 이 시퀀스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완급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도 서서히 올라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생기는 것처럼, 추격장면에서도 강약조절을 하면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 장면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추적하고 있는 실바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채로 시작됩니다. 상대가 어디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묘한 긴장감이 조성되기 시작하죠. 더욱이 실바는 MI6에서 입고 있던 죄수복이 아닌 경찰복으로 도중에 갈아입으면서 숨바꼭질 비슷하게 장면이 전개됩니다. 제임스 본드는 런던 시내의 수많은 인파속에서 변장한 실바를 찾아야 하니 섣불리 뛰어다니면서 주목을 이끌 수가 없게 되죠. 그러다 도중에 실바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서는 전력질주하여 상대방을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완급조절'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 부분이죠.


이 시퀀스에서는 특히나 음악의 역할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빠른 템포와 느린 템포가 적절히 섞여 있는 음악은 추격전의 리듬에 맞춰 관객을 몰입하게 해주었습니다.


마치며..

오늘 이 글을 작성하면서 저도 오랜만에 영화속에서 느꼈던 재밌는 순간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특집으로 찾아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깊이, 밀도의 완벽한 조화"

 

1. 맨몸액션의 진수

앞선 본 시리즈의 두 작품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을 통해 보여주었던 액션은 본 얼티메이텀을 통하여 그 절정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줄거리만 보더라도 이전 두 작품까지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상황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혼자서 헤쳐나간다'는 점 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보여주는 워털루 역의 시퀀스는 그가 얼마나 빈틈없는 요원이었는지를 단번에 상기시켜주죠. 접선대상에게 몰래 핸드폰을 넣어놓고 원격으로 상황을 정리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근접촬영과 더불어 화려한 액션 없이도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다른건 필요없다. 이어폰 마이크만 있다면.

 

워털루 역을 떠나 모로코 탕헤르에서의 시퀀스에서는 최고의 액션 시퀀스가 펼쳐집니다.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며 목표를 추적하는 장면은 이후 수많은 액션영화에도 영감을 줄 정도로 신선한 장면이었습니다.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좁은 방에서의 격투 장면도 빠르게 여러 컷으로 나눈 것이 아닌, 길게 이어진 컷 안에서 서로가 때리고 맞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사실적이고 묵직한 격투신이 탄생하였습니다.

 

협소한 공간에서 카메라가 밀착하여 찍은 장면은 후에 여러 영화에서 인용된다.

 

2. 첩보액션의 새로운 기준

 

본 시리즈 이외에도 첩보액션 영화 시리즈는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007시리즈와 미션임파서블 기리즈가 있죠.

007 시리즈는 첨단장비들과 자동차, 그리고 영국인 캐릭터 제임스본드만의 분위기로 매번 색다른 느낌을 표현하죠.

 

미션임파서블 시리즈는 '팀플레이'가 강조됩니다. 이단 헌트라는 주인공과 같이 긴밀하게 협조해나가는 팀웍으로 말 그래도 불가능한 미션들을 성공해나가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리고 본 시리즈는 위의 두 시리즈들과 다른 기준을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키워드로 표현하자면 '고독'과 '리얼리티'를 선택하겠습니다. 시리즈가 흘러가는 동안 제이슨 본에게는 '팀웍'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국가에게 버려지고 스스로 기억을 찾아나가면서 사투를 벌입니다. 앞서 언급한 007시리즈나 미션임파서블시리즈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액션신과 첨단 도구 등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위기 때마다 주변에 있는 물건(볼펜, 수건, 잡지 등)들로 적과 싸워나갑니다. 어디서나 있을 법한 물건들로 익숙한 공간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액션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3. 자기반성적인 스토리

리뷰의 첫 시작에 저는 "재미, 깊이, 밀도의 완벽한 조화"라고 서술했습니다.

그 중 '스토리의 깊이'가 본 시리즈를 수작으로 기억되게 하는 가장 큰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는 CIA라는 기관에게 버려지고, 기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지금껏 충성을 다해왔던 국가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본 얼티메이텀'에 이르러서는 CIA라는 기관이 국가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부패하였는가를 고발합니다. 아무런 죄 없는 민간인들을 표적으로 지정하여 죽이고, 그 사실을 기밀문서로 만들어 극비 프로젝트로 포장하는 과정은 영화 속의 이야기만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개봉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 다시 관람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에드워드 스노든이 떠올랐다.

 

'본 얼티메이텀'이라는 영화 이후에 개봉한 첩보영화들의 주요 줄거리도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것이 아닌 내부의 적과 조직에서의 갈등을 주로 다루게 된 것도 본 시리즈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1년에 개봉하였던 '미션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만 보더라도 조직으로부터 버려진 주인공이 누명을 벗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이처럼 오락적인 측면으로도 훌륭하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고찰과 반성을 담은 줄거리의 깊이가 본 시리즈를 최고의 첩보 시리즈로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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