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분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먼저 한마디 하자면, 저는 소위 말하는 '노오력충'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이에 대한 의견이 기분 나쁘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노력만 하면 다 된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니들이 성공 못 한 건 노력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운만 따라주면 다 된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 성공은 운이 좌우한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의 성공은 운이 따라줬기 때문이다.' 정말 동의하기도 어렵고 동의하지 않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운'이라는 요소에 대해 깊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온다거나, 노력 안해도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특히 장르소설 작가들이 굉장히 큰 오해를 하고있습니다. 주인공의 주능력이 '운'인 소설도 있고, 굳이 주능력이 아니더라도, 운빨로 모든 것을 다 얻고 성공시키는 주인공이 굉장히 많습니다.


주인공에게 '운'이 너무 많이 따르면 문제인 이유

1. 재미가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물론 어느정도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이 반복될 수 밖에 없거나, 너무 쉽게 풀려서 긴장감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 밖에도 재미가 없는 이유가 많지만, 다음 이유와 더불어 설명하겠습니다.


2. 작가 편의주의가 심하다.

개연성이나 맥락에 상관없이 운이 좋아서 됐다고 치부하면 그냥 끝입니다. 독자는 아무도 공감하지 않지만 작가는 설명을 끝내버린 글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거침없이 사이다 같은 전개인 듯 싶지만, 글이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독자들의 불만이 쌓이거나 연독률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운으로 몇 번 시원한 전개를 쓰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응을 접하면 점점 내용에 작가 편의주의가 심해집니다. 글에 편의주의가 들어가게 되면 글이 정말 정말 정말 재미없어집니다.


3. 개연성

'운'이 메인 요소가 되면 개연성을 맞추기 정말 쉬우면서 어렵습니다. 진짜 '운'으로 다 해먹는 에피소드는 사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냅다 쓴 다음에 주인공한테 운빨 몰아주면 끝이거든요. 문제는, 작가들이 내적갈등을 겪는 듯한 글을 씁니다. 뭔가 주인공한테 위기상황을 부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뜬금없는 운 + 개연성 조금 있는 운 + SSS급 운 등등 운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다보니, 위기상황을 부여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런 상황 부여해봐야 운으로 뚫고 나오니까요. 그러다보니 억지로 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럼 한창 사이다였던 소설이 급 고구마가 되어버립니다. 혹은 억지가 너무 심해서 그냥저냥 잘 읽고 있던 독자들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되죠.


왜 이렇게 '운'에 집착할까?

사실 이는 현 시대상황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노력으로는 성공한 삶을 살기 힘들고, 기성세대가 하도 '노력, 노력'거리니 노력충이라는 단어가 생길만큼 노력에 대한 거부감도 생겼습니다. '나에게도 운이 있다면 새상 살기 쉬울텐데'하는 바람과 기원이 섞인 생각도 있을테죠. 게다가 로또, 비트코인 등 운 하나만으로 인생역전한 사람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운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운으로 모든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에게 대리만족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운을 타고난 사람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기도 합니다. 제벌 2세, 3세 등 운으로 좋은 집안에 태어나 노력 없이(보이는) 인생을 살며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싫어하지는 않더라도 좋아하지도 않죠. 운을 타고났으면 하는 바램과 운을 타고난 사람을 꺼리는 이 두가지의 마음 때문에 작가도 독자도 이러한 운빨소설에 내적갈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선을 잘 타고 작가도 독자도 모두 만족할만할 소설을 쓰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굉장히 많은 조사와 고찰이 들어가야 합니다. 특히나 글쓰기에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장르소설 작가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니면 깊이가 굉장히 얕고 지식의 범위가 굉장히 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운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노력을 끝까지 해보지 않은 주인공들이 많이 보입니다. 30대가 넘어간 백수에, 학창시절 뭔가 하나를 열심히 하지도 않고, 인성이 바르지도 않은 주인공들이 갑작스레 얻은 운으로 성공하는 스토리가 많습니다. 근데 저렇게 찌질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바뀌어서 인성도 훌륭하고(인성 박살났어도 선은 넘지 않고) 행동도 훌륭하고, 갑자기 성공을 위한 노력을 엄청나게 합니다. 

사람이 정말 저럴 수 있을까요? 기회 한 번 주어진다고 이때까지 '나'라는 사람을 구축해왔던 그 모든 부정적인 면모를 다 없애버리고 긍정으로만 채울 수 있을까요?

장르소설에서 '운'에 집착하는 것은 기회를 바라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때까지 기회가 주어진적이 없는 청년들이 그런 글을 쓰고,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죠. 요즘 시대의 청년들에게 기회가 굉장히 희박하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냐하면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논란이 많은 주제이므로 다른 글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장르소설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글 싸지르기 전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글에 대해 깊게 생각만이라도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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