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보다 악하지는 않았다
1. 봐줄만한 액션
코로나 시국으로 영화 개봉이 늦춰지는 현 상황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은 돋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만악'을 보기전에 '반도'도 관람했었지만, 너무나 실망했었기에 어느정도 기대를 낮추고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의외로 액션이 괜찮았습니다. 근접거리의 맨손격투부터 총기를 이용한 액션 시퀀스까지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대를 낮추고 관람하였던 것도 한 몫 했지만, 포스터에 내걸었던 문구처럼 액션영화로서는 충분히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맨손격투부터 얘기하자면, '아저씨'만큼의 정교한 액션 시퀀스는 표현해내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조금 기대하였던 것은 극 중 황정민의 캐릭터는 전직 정부요원입니다. 즉, 대상을 암살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해온 인물이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황정민이 선보이는 액션 시퀀스에서는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느낌으로 그려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영화 극초반부에 펼쳐지는 일본 야쿠자 암살 시퀀스에서는 암살대상의 주변인물부터 하나씩 은밀하게 처리해나가는 치밀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긴 합니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영화가 흘러감에 따라 앞뒤없이 돌진하는 캐릭터로 갑자기 변하면서 일관성이 없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오히려 이정재의 캐릭터가 맨손격투에서는 액션으로서의 쾌감을 선사해줍니다. 황정민처럼 정부요원으로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온 캐릭터가 아닌, 본인의 욕구에 충실한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로 그려진 만큼 상대를 제압하는데 있어서 더욱 과격한 액션을 표현해냅니다.
그리고 후반부의 총기액션입니다. 아무래도 인물들간의 신체가 직접 부딪히는 맨손격투보다는 긴장감이 덜한 것이 총기액션입니다. 액션의 주체가 되는 것이 총알 뿐만이 아닌 폭탄과 차량들도 더해져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그렇기에 '다만악'은 스케일을 키워서 표현하는 것에 더 집중을 하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국영화의 총기액션은 '우는남자'가 마지막이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돌격소총이을 사용한 액션은 이질감이 들지만 동시에 인상 깊게 남은 영화였습니다. 반면, '다만악'은 태국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여 표현의 제약을 낮추었습니다. 이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2. 믿고보는 배우들
앞서 서술했던 액션 뿐만이 아니라 각 캐릭터를 표현한 배우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뚜렷한 선악의 대립구도는 아니지만, 황정민과 이정재는 각기 다른 개성으로 캐릭터를 그려내었습니다. 황정민과 이정재라는 두 배우의 조합은 이미 '신세계'에서 많은 관객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다만악'에서는 '신세계'에서처럼 흔히 말하는 케미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두 배우의 캐릭터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다만악'에서는 캐릭터들의 대립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많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은 센 캐릭터라기보다는 처절한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영화 극초반부의 암살을 끝내고 나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듯한 연기는 후반부의 어떤 비밀을 알고 나서 변해가는 황정민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좋은 발판으로 그려집니다. 황정민의 캐릭터는 평생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살아온 인물입니다.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에 지쳐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그의 캐릭터는 우산도 안쓰는 것, 아무런 가구도 놓여있지 않은 집에서 맨바닥에 누워서 자는 것 등으로 표현해낸 것도 공감을 일으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황정민의 캐릭터의 서사에 굳이 사랑을 집어넣었어야 하는가 의문이 남습니다. 다른 영화보다는 신파적인 요소를 많이 자제한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조금 더 냉정한 캐릭터로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반면 이정재의 캐릭터 '레이'는 확실히 인상에 남을만한 캐릭터입니다. 사실 개연성을 따지고 보자면 황정민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이긴 합니다. 극초반부에 살해당한 야쿠자의 의형제처럼 그려지지만 정작 후반부에 가서는 황정민을 죽이는 이유에 대해서 '이유 같은것은 까먹었다'라고 말을 할 정도니 말이죠. 그러나 이정재라는 배우가 그려온 악역의 이미지 중에서는 '관상'의 수양대군만큼 확고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창백한 얼굴에 문신으로 가득한 몸에 화려한 옷을 입어도 멋있어 보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관상'에서는 송강호의 대사처럼 이리같은 비열한 이미지로 그려졌지만, '다만악'에서는 뱀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황정민을 쫓는 자로서의 '레이'는 치밀함이 부족하게 그려진 것이 아쉬웠습니다. 황정민이 만나는 주변인물들을 하나씩 죽이면서 범위를 좁혀가지만, 너무 사전설명 없이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쫓아옵니다. 황정민이라는 목표를 조사하는 디테일한 묘사가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정민의 '유이'입니다. 출연자 목록에는 있지만 예고편이나 포스터에 등장하지 않은 만큼 저도 궁금해하면서 그의 등장을 기다렸습니다.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감초같은 역할입니다.
3. 인상적이었던 촬영
기대를 낮추고 보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던 액션이었지만, 촬영기법도 어느정도 기여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액션신에서 여러개의 컷으로 나눴다거나 CG를 사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물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움직임도 촬영의 기술이나 CG를 이용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쾌감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반복되면 지루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만악'도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는 액션 촬영의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황정민과 이정재의 맨손격투 장면에서는 슬로모션과 카메라의 움직임을 과장되게 하는 것으로 서로를 때리는 충격을 전달시킵니다. 효울적인 선택이었고, 또한 효과적인 선택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액션신의 제일 큰 목적은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촬영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은 당연한 선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만 더 욕심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후반부의 태국 로케이션도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영화의 재미에 제 역할을 합니다. 전반부까지의 한국이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었다면, 중후반부의 태국으로 넘어가면서 색감이 밝아지고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태국으로 화면이 전환될때에 음악이나 편집도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총기를 사용한 액션의 제약을 없앴다는 것이 가장 큰 역할입니다.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을 위험하고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범죄도시처럼 그려낸 것은 어느정도 반발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한국 관객에게 있어서 이질감을 없앨 수 있는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4. 마치며
코로나 시국으로 볼 영화가 많이 없는 중에 반갑게 관람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았던 영화이기 때문에 액션영화로서의 재미는 충분히 느끼실 수 있습니다. 잔혹한 장면이 생각보다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비위가 약하신 분들도 크게 무리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