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건조하게 깔끔하게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최측근 인물이 사살한 것은 흔치 않은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다루어져 왔던 소재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005년도 작품 '그 때 그 사람들'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이 블랙코미디의 느낌이었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건조하고 무겁게 흘러갑니다.
두 작품 모두 재미있게 감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남산의 부장들'을 더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실화에 기반하고 있고, 블랙코미디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암살사건이라고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마피아 조직을 다룬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조직의 보스 자리가 위태로워지면서 살아남기 위한 2인자들의 심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다만 조직이라는 곳이 중앙정보부와 청와대이고, 그 보스가 18년 동안 장기집권해온 대통령이라는 것 뿐이죠.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에서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짧은 시간을 다룹니다.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피살하기 40일 전부터를 그려내고 있죠. 40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그 주변 2인자들의 관계에만 집중합니다. 당시의 일반 시민들의 상황이나, 제 3자의 시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 믿고보는 배우들
실화에 기반한 영화인 경우에는, 실제 인물과 생김새가 얼마나 비슷한가가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그런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심리를 표현한 연기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박정의 대통령을 연기한 이성민은 극 중에서는 제일 정적으로 표현됩니다. 자신의 대통령직에 위기가 다가올 것을 알고 2인자들(이병헌, 이희준)의 충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합니다. 아무래도 상징적인 인물이다보니 겉모습에서도 가장 닮게 표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외모 뿐만이 아닌, 언행에서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곁엔 내가 있잖아'와 같이 의중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모호한 말버릇까지 세심하게 연기하였습니다.
곽도원은 분량이 적은 것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극 초반 청문회에 출석하면서 모든 등장인물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우리에게는 제일 익숙한 능글맞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상은 언제 제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싸인 심리를 감추기 위해 조금 과장된 연기를 보여준 것이 새로웠습니다. 제일 먼저 박정희 대통령에게 버림받고 이병헌에게도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면서 혼란의 씨앗을 제공하죠. 권력에 의해 먼저 희생될 때 한 켤레밖에 없는 구두를 바라보는 눈빛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가장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희준은 제일 큰 변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이병헌과 대립해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극 초중반까지는 이성민(박정희 대통령)에게 신임받지 못하고 이병헌에 대한 열등감에 하극상까지 벌이지만, 중후반부에는 입장이 역전되면서 걸음걸이나 행동이 커지는 표현이 인상깊었습니다. 이희준 배우 본인도 위압감을 위해 체중을 늘렸다고 밝혔는데, 확실히 커진 풍채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극의 긴장을 불어넣는데 충분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가장 감정이 폭이 큰 연기를 보여준 이병헌은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김규평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달콤한 인생의 선우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우두머리에게 버려지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많이 닮았습니다. 허나 김규평이라는 캐릭터는 후반부의 궁정동에 이르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이중적인 감정을 훌륭하게 표현해내었습니다. 마지막 궁정동에서의 거사를 실행하기 직전 술잔을 따르고 음복을 하는 그의 모습은 필히 극장에서 관람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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